마르크 샤갈 - Human


동물이 이끄는 환상의 세계


샤갈은 일반인에게도 친숙하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 동화의 나라에 온 것처럼 평온하고 아름답다. 그의 작품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등 원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원색들은 강렬한 색채를 뽐내며 눈을 자극한다. 이처럼 그림의 형태보다는 색으로 먼저 다가오는 것이 샤갈 작품의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샤갈만의 독특한 소재다.



동물, 주인공이 되다

화려한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샤갈은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 가난한 행상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을 박해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상처를 받고 말더듬이가 될 정도로 힘들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행하게 그의 청년시절도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예술 활동을 펼쳤다. 한 때 사랑하는 연인, 벨라를 만나 잠시 행복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샤갈의 인생은 그의 그림을 닮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려 한걸까? 샤갈의 그림은 맑고 동화 같고 행복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동물들이다.

샤갈은 동물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화가들과 달랐다. 대표작 <나와 마을>을 보자. 왼쪽엔 염소 얼굴이, 오른쪽엔 사람 얼굴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등하게 그려져 있다. 마주보는 것을 넘어 무언가 교감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살짝 미소를 띠고 있어 따뜻한 느낌도 준다. 그의 다른 작품 <농부의 삶> <에펠탑의 부부> <고독>등에서도 동물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샤갈의 그림 속 동물들은 때론 하늘을 날아다니며 달콤한 행복을 선물한다. 그에게 동물은 희망의 아이콘이자 주인공이었다. 그럼 다른 화가들의 그림 속 동물들은 어땠을까? 샤갈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을까?




동물은 수단일 뿐

대부분의 서양화에서 동물은 인간이 이용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사냥감이거나 운송수단의 일부, 또는 일종의 장식품이었다. 몇 개의 그림을 살펴보자. 먼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앞발을 들고 있는 말의 역동적이 모습 때문에 나폴레옹의 정복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말의 용맹스런 근육은 또 어떤가? 나폴레옹의 화려함과 당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존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나 장 프랑수아 밀레의 <돼지를 잡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동물들은 마차를 끌거나 사람을 위한 식량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옛날 그림에서 동물이 주인공이 되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옛날부터 인간은 동물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의 우두머리이고, 자연은 정복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는 고스란히 서양 미술에도 번졌다. 그림 속에서 동물은 사람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가는 이런 대세를 따랐다. 하지만 샤갈이 이를 뒤엎은 것이다. 그에게 동물은 인간을 위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동물을 수단으로 표현한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샤갈은 동물을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은 샤갈. 그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른 이단아였다.


 

 



 

 


앤디 워홀 - Human

콜라 앞에선 모두 평등 하노라

40년 전, 비누 상자를 전시하며 미술계에 혼란을 일으킨 앤디 워홀. 이후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들을 미술로 끌어들이며 팝아트의 유행을 선도했다. 미술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자.



앤디 워홀은 돈 있고 고상한 사람들만을 위한 미술이 싫었다. 그는 가난한 대중에게도 미술의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만화, 신문 보도사진,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잘 알려진 이미지를 반복하고 확대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푸른 코카콜라 병들>. 자칫 콜라 광고 같은 이 작품은 112개의 코카콜라 병을 특별한 변형 없이 기계적 느낌이 들도록 나열해 놓았다. ‘나도 할 수 있겠네. 라는 말을 읊조리는 이들에게 워홀은 아래와 같이 깊은 뜻을 전달했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성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구입하는 전통을 세웠다는 것이다. 당신들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미국 대통령이 마시는 것과 동일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같다.


아, 이 얼마나 통쾌하고도 유쾌한 시각인가! 앤디 워홀은 콜라병 앞에 모든 이들의 평등을 주장했다.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워홀의 배신(?)은 계속됐다. 그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귀하신 미술 작품 속으로 진출시켰다. 특히 대중들이 알만한 스타들을 작품 소재로 선택했는데, 이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팝아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상업적인 게 어때서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음에 모두가 슬퍼했다. 이런 슬픔을 헤아린 걸까? 워홀은 그녀를 자신의 예술 세계로 데려왔다.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은 자연히 워홀의 작품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 <마릴린 먼로>를 보자. 그녀의 사진을 약간만 변형시켜 반복적으로 나열해 놓았다. 이 작품에서 그녀만의 매력이나 개성은 전혀 없다. 오래 보고 있으면 하나의 사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는 워홀의 미술에서 복제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에도 워홀은 같은 소재를 동일하게 나열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존 F. 케니디 등 미디어가 주목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들이 워홀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워홀은 표현방법 뿐 아니라 표현 대상도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알 수 있는 쉬운 소재를 선택한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워홀의 작품을 찾았고, 그의 작품은 대량생산되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 전의 고급 예술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이쯤 되니 반대세력들이 미술의 상업화를 추구한 워홀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진지해야할 예술이 대량생산을 통해 저급한 상품처럼 되었다는 것. 여기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희소성이 없어졌다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워홀의 대응은 발칙했다. 그는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외치며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 불렀다. 그리고 미디어가 쏟아내는 이미지에 익숙해져 무감각해지는 현대인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표정 없이 나열된 여러 스타들처럼. 어쨌든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호평과 비난으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어쩌면 워홀은 누군가가 봐줘야 완성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빈익빈 부익부가 사회에 만연하고 보이지 않는 신분이 사람들을 동여 맬 때, 예술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상업적인 예술을 선보인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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